실패할 기회조차 박탈당한 사람들에게, 윤태호 작가의 <오리진> - WIIZM WEBTOON (WEBTOON INS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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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진

실패할 기회조차 박탈당한 사람들에게, 윤태호 작가의 <오리진>


오리진

official icon 실패할 기회조차 박탈당한 사람들에게, 윤태호 작가의 <오리진>

<이끼>, <미생>의 작가. 한국을 대표하는 만화가. 이 시대의 만화가, 만화가협회 회장. 윤태호 작가를 부르는 호칭은 다양하다. 열심히 공부하는 작가로 유명하기도 하고, 그만큼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그리고, 윤태호 작가가 또다른 시도를 시작했다. 바로 <오리진> 시리즈다. 100권을 목표로 하고 있는 교양만화 오리진은 각 챕터별로 주제를 정하고, 윤태호 작가와 편집자들이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간다. 한 인터뷰에서 윤태호 작가는 “첫 번째 독자인 편집자들이 저보다 더 많이 자료 조사나 공부를 했어요. 이 분들이 납득하고 오케이하지 못하는 내용은 제가 그릴 수가 없는거죠."라고 말했다. 그만큼 많은 이들의 노력이 들어가 있는 만화다. 이런 제작방식은 윤태호라는 이름값이 가지는 힘이라고 할 수 있겠다. 윤태호 작가 본인도 30년만에 처음 도전하는 제작방식이라고 했으니까, 새로운 도전인 셈이다.




<오리진>은 모든 것을 이룬 인류가 영생마저 손에 얻은 다음 자살자 수가 급증하자 대책을 찾기 위해 인류가 가장 번성했던 시기인 21세기로 로봇 한대를 보내는데서 시작한다. 로봇은 마치 아이 같아서, 21세기의 인류에 대한 것들을 습득해 오는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그리고, 그 로봇이 도착한 곳은 21세기 도봉구의 로봇 개발 스타트업 ‘드림 로봇’이다. 대표는 투자금을 가지고 튀었는지 도망갔고, 남은 개발자들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 쓴 상황에서 미래에서 로봇이 찾아온 것이다. 대출까지 받아 투자했던 프랜차이즈 치킨업체의 과장 봉황은 당연히 그 로봇을 받아가려고 한다. 하지만 드림 로봇의 개발자들은 그 로봇을 담보로 해서 새로운 활로를 찾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로봇 ‘봉투’와 봉황 가족, 드림 로봇의 개발자 동구리 일행의 이야기가 챕터별로 보온, 에티켓, 화폐, 상대성이론으로 이어지는 주제들을 풀어간다.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궁금증에 대한 답은 하나로 귀결된다. 공동체를 통한 공존, 또는 공생이다. 1층에 공용화장실이 있는 하숙집에 사는 분식집 가족, 집주인 가족, 2층에는 빚쟁이 봉황네 가족과 동구리를 비롯한 개발자들이 산다. 보온에서는 개인의 체온 유지부터 가족간의 정을, 에티켓에서는 가족끼리, 인간끼리 지켜야 할 적당한 거리를, 화폐 편에서는 돈으로 맺어진 관계와 돈이 아닌 교환가치로서의 화폐, 즉 서로 가진 것을 교환하며 공생하는 관계를 그리고 있다. 공동체의 삶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공간적 배경을 달동네의 하숙집으로 삼은 것은 적절했다. 하지만, 21세기의 삶과는 동떨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21세기의 생의 의지를 봉투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했지만, 사실은 20세기에 흔했던 주거형태와 지금의 20-30대에게는 익숙하지 않은-또는 강제로 받아들여야 하는 삶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그리고 있는 지점이 눈에 띈다. 예를 들어 취업을 포기하다시피 했던 사람은 10년간 일한 베테랑이 ‘100억과 20대로 돌아가는 것 중에 고르라면 나는 20대를 택한다’는 말을 듣고 ‘나는 젊음을 낭비하고 있구나!’ 하는 깨달음과 함께 원래는 단기간만 하려고 했던 택배 상하차 일을 시작하는 장면에선 작품을 계속 읽어야 하나 고민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미대를 나왔지만 초등부 방과후 학교에서 과학상자 만들기 수업을 하던 사람은 유치부 수업을 무료로 해주는 대신 수업을 유지한다. 박사까지 하고도 로봇개발 업체에서 일을 하다가 대표가 도망가 빚쟁이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 동구리와 그 친구들은 봉황의 딸에게 세 과목 과외를 해주는 대신 월세를 부탁한다. 지금까지의 삶을 부정하고, 새로운 시작을 각오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다. 그러나, 작품에서 그들을 납작하게 소비하고 있는 것은 옳지 못하다. 돈 이외에 다른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메시지는 납득할 수 있지만, 개인이 돈을 위해 포기한 가치들은 외면하는 지점이 불편하다.


공동체의 품앗이로 공생하자는 메시지를 전하면서, 그 안에서 그걸 위해 포기해야 했던 것들은 ‘그래도 뭐라도 했다’는 긍정으로 포장해 버리는 것은 옳은가? 최근 회차인 ‘상대성이론’ 편에서는 이런 생각이 더 강하게 드러난다. 30살에 박사과정을 마칠 정도로 열심히 살아온 동구리가 자신의 시간을 ‘사춘기’로 정의한다. 윤태호 작가의 작품에는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멈춰 있는 지금을 부정하며 밖으로 나아가 뭐라도 하기로 결정하는 사람들이 자주 등장한다. 어쩌면 작가는 사회적 문제를 개인화하고 그것을 노력으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대목이다.




일자리에 비해 인구가 많아서 생기는 문제, 거기에 사람들의 교육수준은 올라갔기 때문에 고스펙 경쟁을 할 수 밖에 없는 문제는 뒤로 밀려난다. 이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멈춰 있는’ 사람이나 ‘정체된’ 사람으로 묘사되고,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원하던 곳 보다 낮은 곳으로 눈을 돌려야 하는 선택을 긍정하는 모습은 보기 불편하다. 동구리는 말하자면 실패할 기회조차 박탈당한 사람이다. 사회가 원래 그런 것이니 인정하고 나아가자는 말은, 관성을 깨려면 동구리처럼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쯤은 되어야 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동구리는 20대에 박사가 됐고, 1년간 인공지능 개발 스타트업에 몸담아 돈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일했다. 그리고 지금은 대표가 남기고 간 빚을 떠안고 단칸방에 친구 네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과연 21세기가 생의 의지가 가장 넘치는 시대인가? 작품을 보고 처음 들었던 생각이다. 특히 지금의 대한민국이 과연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에서는 미래의 인류가 생의 의지를 잃고 소멸해가고 있다고 적었다. 인공지능이 고도로 발달했고, 인간은 더 이상 공부를 하지 않아도 인공지능에서 지식을 꺼내 쓸 수 있게 되었고, 영생을 얻었고, 더 이상 어떤 것도 욕망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는 식이다. 그래서 생의 의지가 가장 들끓었던 지금의 한국으로 로봇을 보냈다니, 조금 허탈했다.

지금의 한국은 인구도 거의 늘어나지 않고, 자살자는 세계에서도 손꼽을 만큼 많으며, 사회안전망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공동체의 공존을 이야기하는 건 너무 나이브하다. 대부분 젊은이들의 주거형태는 전직 대통령들이 구속된 구치소보다 열악하지만, 버는 돈의 많은 부분을 월세로 지불해야 한다. <오리진>은 이런 현실은 외면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윤태호 작가의 작품들은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오리진>은 다양한 테마를 주인공들이 함께 생활하는 하숙집과 엮어 공동체의 생존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의 동구리들이 살아가는 공간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을 떨쳐내기 힘들다. 공동체의 몫을 위해 자신의 것을 희생하라는 메시지도 고루하다. 뿐만 아니라 작품 곳곳에 엿보이는 중년 남성에 대한 연민과 사회적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무책임함은 답답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보는 이유는 이렇다. 총 100권을 기획하고 있다는 이 작품은, 작가의 말에 따르면(그리고 어쩌면 당연하게도) 작품과 작가가 함께 진화해 가는 작품이다. 말하자면, 작품을 그리는 작가도, 작품 자체도 ‘봉투’와 같다는 말이다. 우리나라에 부족했던 교양만화의 새로운 도전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되다가도 응원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패할 기회조차 박탈당한 사람들과 함께, 그들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작품이 되기를 응원한다.



* 본 리뷰/평론은 이재민 웹론평론가와 성인수 만화평론가/작가 공동으로 진행하였습니다. 이재민 웹툰평론가는 웹툰을 기준으로, 성인수 만화평론가/작가는 출판만화를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이재민(푸른봄) 웹툰평론가 웹툰 평론 "실패할 기회조차 박탈당한 사람들에게, 윤태호 작가의 <오리진>"

* 성인수 만화평론가/작가의 출판만화 평론 "윤태호, <오리진>"



한줄평) 100권을 목표로 하는 교양만화. 윤태호 작가의 작품으로 다양한 주제를 흥미로운 시각으로 풀어내고 있다. 어쩌면 작가와 우리 모두, 작품 속 '봉투'처럼 진화하고 있다.


장점

  • 경제, 과학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 다양한 주제.
  • 철저한 준비를 통해 편집부와 함께 만들어 나가는 만화.
  • 작가와 작품이 함께 진화해 나가고 있다.
단점

  • 21세기의 시대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듯 하다.
  • 작품 속에서 비춰지는 "노력"에 대한 미화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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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봄
  • 작성자 : 푸른봄
  • 작성일 : 2018/04/18 - 21:48
  • 소개글
만화를 좋아합니다.
때문에 웹투니스타를 시작했고, 어쩌다보니 평론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만화 평론과 만화계 전반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문의 : webtoonistar@naver.com

2 Comments

2018/04/20 - 01:44

이세인

개인적으로 스크롤 방식이 익숙하다보니 저스툰에서 감상하는 것이 더 편하더군요. 그래도 전권이 나온다면 구매해서 진열해 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8/04/20 - 08:02

성 인수

출판물 같은 경우엔 참여한 글 작가님들이 다양한 비하인드 정보들도 함께 나와있어서 작품 이외에도 음미할 내용들이 많아서 좋았어요. 저도 지금 하나하나 사고 있습니다. //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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