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에세이) 세계의 만화가 '다니구치 지로', 그의 작품들을 돌아보며 1부

서문

2017년 2월 11일(토) 세계의 만화가 다니구치 지로가 사망했다. 사실 나는 그의 작품을 그의 죽음 두 달 전 처음 만났는데 2016년 12월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지구빙해사기(地球氷解事紀)/2016]라는 작품이었다. 세기말이 십수 년 남은 80년대 말의 일본 작가들이 흔히 던지던 포스트 아포칼립스 서사시들 중 한 갈래였다. 하지만 난 이 작품을 읽고 곧바로 인터넷서점을 통해 그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볼 수밖에 없었다. [지구빙해사기]가 그의 최고의 작품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앞에 펼쳐진 그의 작품리스트는 너무나도 방대해 무엇을 어디서부터 읽어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한 사람이 이렇게 다양한 시대와 다양한 컨셉트의 만화를 만들다니, 그것도 이곳은 일본이 아닌 한국이다. 번역되어 넘어온 것만 이 정도인 것이다. 

해서 난 SNS를 통해 다양한 분들에게 다니구치 지로의 작품을 추천받았고 가장 많이 추천을 받았던 작품은 [열네 살_원제 "머나먼 고향"(遥かな町へ)/1998]. 가장 강력하게 추천을 받았던 작품은 [신들의 봉우리(神々の山嶺)/2000-2003]. 마지막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알려주었던 작품은 바로 [고독한 미식가]였다. 사실 그 외에도 [도련님의 시대(「坊っちゃん」の時代) 1-5권/1987-1996], [선생님의 가방(センセイの鞄) 1-2권/2005-2007], [하늘의 매(天の鷹)/2001-2002], [우연한 산보(散歩もの)/2003-2005] 등의 추천도 있었기에 여전히 선택은 어려웠다.

원래 2월 웹툰인사이트에 쓸 원고로 나는 [신들의 봉우리]를 원했지만 웹인 대표님은 [고독한 미식가]를 원했고 웹툰평론가 이신 푸른봄 작가님은 아예 다니구치 지로의 작가론을 써보라고 추천했다. 그래서 고민 끝에 작가론을 쓰기엔 아직 그의 작품을 모두 읽지 않은 내가 부족하고, 그렇다고 한 작품만 소개하기엔 방대한 작품을 남긴 그에 대한 예의가 아닌 듯하여 가장 유명한 작품과 가장 강렬했던 작품, 그리고 가장 많이 추천을 받은 작품 하나씩을 꼽아 그의 1주기를 추모하려 한다.




다니구치 지로(谷口ジロー)

1947년 8월 14일 다니구치 지로는 돗토리 현에서 재단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만화를 굉장히 좋아하던 그는 중학생 때 이미 잡지사에 원고 투고를 시작했다. 성인이 되는 1966년 돗토리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교토의 섬유회사에 취업했지만 만화가라는 그의 꿈을 이루기 위해 도쿄로 상경해 이시카와 규타의 어시스턴트 업무를 시작한다.


1971년 [목쉰 방]으로 데뷔를 했고 1975년 [먼 목소리]로 제14회 쇼가쿠칸 빅 코믹스상에 입선하면서 그의 작품 인생 수많은 수상의 서막은 연다. 하지만 그 이후 지로의 초기 작품에선 [더티 해리(Dirty Harry) 1971]같은 할리우드 액션 영화에서 영향을 받은 듯한 하이 보일드 작품이 상당수가 있어서 지금 우리가 기억하는 그의 잔잔한 분위기의 작품들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무방비도시(無防備都市)/1978]를 시작으로 같은 해 연재를 시작해 다음 해 지로의 첫 단행본 작품이 된 [린드!3(リンド! 3)/1979]를 지나 1980년부턴 한국엔 출간되지 않은 그의 초기 대표작 [해결사 가업(事件屋稼業)/1980]을 [신-해결사 가업(新・事件屋稼業)/1982-1994]으로 이어가며 오랫동안 연재했다.

그 사이 1987년부턴 또 다른 대표작 [도련님의 시대(「坊っちゃん」の時代)/1987-1996]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도련님]이라는 소설을 통해 메이지 시대 말년의 일본 사회와 사상을 표현했던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 제작 과정을 만화로 그린 작품이었다. 그리고 이 작품은 1993년 일본 만화가 협회 우수상과 1998년 데즈카 오사무 문학상 대상을 수상하며 명실상부 그의 대표작으로 자리 잡았는데 청년 시절의 지로의 첫 번째 매력 포인트는 바로 이 과정에 있다. 바로 자신이 "해야 하는 만화"와 "하고 싶은 만화" 또 "할 수 있는 만화"를 분별하여 병행했다는 것이다.


작가 본인이 선택 유무를 떠나 당시 잘 팔리는 상업성 높은 만화들을 글 작가들과 꾸준한 협업으로 그려내면서 다른 장르의 여러 작품들을 읽고 연구하며 자신만의 색깔을 지낸 작품을 조금씩 준비해나간 것이다. 실제로 위에 소개한 작품말고도 80년대 초부터 90년대 중반까지 그는 다수의 하이 보일드 만화를 병행하고 또 자신의 섬세한 묘사와 잔잔한 분위기를 어필할 수 있는 작품을 준비했으며 자신의 강점인 동물 묘사를 보여줄 수 있는 [원수 사전(原獣事典)/1987-1990]같은 작품들도 연재를 했다. 그리고 그 비중은 시대의 변화도 한 몫했겠지만 점점 뒤로 갈수록 지로가 원했을 것 같은 작품 위주인 동물 묘사가 강한 작품이나 소소하고 잔잔한 이야기가 흐르는 작품들로 무게중심이 바뀌게 된다.




연재 없이 단행본으로 곧바로 출간되었던 [해경주점(海景酒店)/1986]이 1990년 북미에 번역 출간되어 해외로 작품이 유통되기 시작했고 [산책(歩く人)/1990-1991]이 1992년 프랑스에 출간되면서 해외에서도 점점 인정받기 시작했다. 같은 해 곧바로 단행본 출간된 [개를 기르다(犬を飼う)/1992]로 제12회 일본 만화가 협회 우수상과 제39회 소학관 만화상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는데 이후에도 그의 작품들의 굵직한 수상들은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이 시기가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고독한 미식가(孤独のグルメ)/1994-1998]의 연재 시기이기도 하다.

1998년 발표된 [열네 살]은 일본과 유럽에서 호평을 받으며 1999년 제3회 문화청미디어예술제의 '만화 부분 우수상'과 2002년 제30회 앙굴렘 국제만화 페스티벌에서는 '최우수 시나리오상'을 받았다. 또한 2000년부터 연재한 유메마쿠라 바쿠 원작의 [신들의 봉우리]도 2001년 제5회 문화청미디어예술제의 '만화 부분 우수상'과 2005년 앙굴렘 국제 만화 페스티벌어서'최우수 미술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이 후부터의 대부분의 연재작들은 국내의 여러 출판사에서 출판되었는데 [느티나무의 선물(欅の木)/1999], [하늘의 매(天の鷹)/2001-2002], [우연한 산보(散歩もの)/2003-2005], [창공(晴れゆく空)/2004], [동토의 여행자(凍土の旅人)/2004], [시튼(シートン)/2004-2006], [겨울동물원(冬の動物園)/2005-2007], [선생님의 가방(センセイの鞄)/2005-2007], [에도산책(ふらり。)2011], [사냥개 탐정(猟犬探偵)/2011-2012], [천년의 날개 백년의 꿈(千年の翼 百年の夢)/2014] 등이 있다.


이 끊임없는 연재력과 꾸준함이 작품성 이외에도 많은 만화가들이 존경을 표하고 박수를 보냈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는 쉰 적이 없다. 그리고 명확히 계획했다고 볼 순 없지만 상업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어찌 보면 당연한 의무를 데뷔 초 견뎌내며 찬찬히 준비를 했고 끝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만화가가 되었다. 이렇게 다작을 남기면서 그의 작품 퀄리티가 남다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난 그 이유를 원작이 있는 작품을 선택하는 것과 혹은 글 작가와의 원만한 협업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고독한 미식가]의 국내 증보판에 보면 원작자 구스미 마사유키가 "자신이 글로 설명해둔 것들이 묵묵히 그림이 되어 돌아올 때 신기함을 느꼈다."라고 했는데 지로는 아마 협업 과정 속에서 원작자가 원하는 것을 되도록이면 최대한 표현해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물론 그림작가는 글 작가가 의도하는 바를 최대한 표현해야 함은 당연하지만 그 과정이 원만하지 않은 경우가 굉장히 많다. 그래서 출판사의 중재로 서로 교류가 거의 없이 연재를 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또한 대중이 선호하는 작화 스타일이 끊임없이 변해 온 일본 시장에서 그 시대를 넘어 꾸준히 글 작가들과의 협업이 가능했다는 점을 볼 때 글 작가들과의 관계가 원만했을 것이라고 예상해 볼 수 있다.

또 원작이 있는 작품을 선택한다는 것이 스토리 뼈대 구상의 시간을 줄여주기에 각색과 연출에 더 많은 고민을 할 수 있고 또 "이 원작을 만화로 옮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즉, 팬심과 열정이 작가의 평소 성실함과 콜라보가 되어 더욱 세밀한 작품 묘사로까지 이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그게 바로 다니구치 지로의 작품의 원동력 힘이 아니었을까라 넌지시 예상해본다.


그는 평생을 걸친 작품세계를 통해 인생의 후배들, 혹은 후배 만화가들에게 많은 의미를 남겼다. 데뷔 후 많은 만화가들이 상업성을 위해 출판사와 대중들이 요구하는 만화를 끊임없이 만들다가 정작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표현과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끝끝내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이럴 경우 작가 스스로가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거나 밀려오는 마감에 지쳐 한 번씩 주어지는 기회조차 포기해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지로는 그것을 견뎌내며 주어지는 기회를 잡고 서서히 자신의 작품세계를 대중에게 어필해 나갔다는 점에서 찬란했다. 이 점은 많은 신인 만화가들이 겪는 수익과 정체성의 혼란에 대해 어떤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장르와 시대를 오가며 자신의 한계에도 끝없이 도전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는 절대 자신이 잘하는 범주 안에서 안주하지 않았다. 항상 무리하지 않는 듯하면서도 조금 더 조금 더를 외쳤음이 배경 한점까지 놓치지 않고 그려내는 자세에서 느껴졌다.


한 작가의 인생이 마침표를 찍고 그가 남긴 여러 작품들이 국내의 여러 출판사에 다수 출간되어 있다. 오래된 작품들도 많기 때문에 한 권 한 권의 가격도 그렇게까지 비싸진 않다. 한번 찾아보고 그의 작품세계에 빠져 교감하며 우리의 삶에 필요한 템포나 여유 있는보폭, 따뜻한 공기 등을 고민하고 소화해보는 것은 어떨까.

참고로 국내에 출판된 그의 책들은 어느 작품이 먼저 연재된 것인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다양하게 출간되어 있고 그것에 대한 정보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래서 인수니즘코믹스의 사이트에 국내에 출간되어 있는 지로의 모든 작품의 일본에서의 연재시기를 순서대로 정리해두었다. 스타워즈나 건담을 처음 접하고 싶은데 어떤것 부터 보아야할지 모르겠는 기분이나 다니구치 지로라는 작가의 작품을 연대별로 천천히 감상하며 그 변화를 음미해보고 싶으신 분들은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다니구치 지로 국내 출간만화 연재연표" -> 바로가기




[고독한 미식가(孤独のグルメ)/1994-1998 / 2008]

다니구치 지로의 작품 중 우리에게 가장 유명한 작품은 당연 [고독한 미식가]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TV 드라마인 [고독한 미식가]를 알고 있는 것이지 원작 만화가가 누구인지는 잘 모른다. 또한 이것의 원작자가 다니구치 지로가 아니라는 것도 많이들은 잘 모른다.

"주인의 성품과 그 식당의 역사가 엿보이는 곳에 마음이 끌린다."는 원작자 구스미 마사유키는 1958년생인 일본의 만화가, 에세이리스트다. 대부분을 음식을 주제로 한 글을 작업하였는데 한국에도 그의 여러 작품들이 출판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오늘 주제와 부합하는 추천도서는 이숲출판사에서 나온 [고독한 미식가 맛집 순례 가이드]라는 책으로 저자는 "주간 SPA! [고독한 미식가] 취재반"으로 되어있다. 풀컬러의 책으로 모토는 "만화 [고독한 미식가]를 원작으로 절찬 방영된 TV시리즈 [고독한 미식가] 그 맛집 순례에 본격적으로 나서보자!"라는 것이다. 원작자의 러프한 인터뷰와 TV드라마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마츠시게 유타카의 "실례되는 말이지만 처음에 이걸 드라마로 만든다고 했을 때 '그걸 누가 볼까?' 했죠(웃음)."라는 정직한 멘트와 함께 시작되는 인터뷰도 여러 맛집 정보와 함께 수록되어있다.

구스미 마사유키는 지로와 협업한 [고독한 미식가] 이외에도 츠치야마 시게루와 함께한 [방랑의 미식가]와 [황야의 미식가]라는 작품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다니구치 지로는 "음식 만화를 그려본 적 없는데 왜 내게 이런 제안이 들어왔는지 의아했다.(웃음)"라며 당시 첫 제안을 2010년 인터뷰에서 회상하고 있는데 주인공에 대해선 당시 담당 편집자의 "멋을 좀 부려달라."는 제안에 집중해 풀어나갔고 작가 개인은 최소한 음식만이라도 맛있게 그려야 한다는 것과 먹는 모습에서 "맛있어" 혹은 "맛없어"의 표정을 제대로 그려내는 일에 집중했다 말하고 있는데 그 의도들은 작품에 아주 잘 드러나있다.


1994년부터 연재를 시작한 [고독한 미식가]는 연재 중에는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디테일한 음식 묘사와 감성 표현은 매우 훌륭했지만 큰 사건 없이 매 편 옴니버스로 흘러가는 스토리와 수입물품 유통을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중년 남성이 그냥 음식점에서 밥을 먹는 내용이기에 대중성을 갖춘 작품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18편 정도에서 당시 완결이 된 것이 당연하다고 여겨진다. 정리하자면 작품성은 훌륭했지만 대중성을 갖추진 못했던 작품이었다 정도인데 이 부분이 중요한 포인트이다. 왜냐하면 그 작품성 덕분에 대중이 어떤 계기로 다시 이 작품을 찾게 되었을 때 인정을 받고 인기를 누릴 수 있었고 2010년엔 1권의 증보판, 2012년 TV 드라마가 나왔고 또 2015년엔 2권이 출판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인터넷의 보급으로 네트워크가 강화되는 시기가 있었는데 어디서나 그 초창기부터 "짤방"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원래 "짤방"이란 그 인터넷 게시판의 성격이나 주제에 벗어난 글을 올릴 때 "잘림 방지"를 위해 함께 올리는 JPEG나 GIF형식의 사진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짤방"은 점점 사진만으로 이루어진 패러디 게시글들로 발전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패러디에 부합하는 내용이었는지 진지한 표정의 주인공 이노가시라 고로는 대중들에게 좋은 패러디 원소스로 활용되었다.

원래 대부분의 만화 패러디가 그렇다. 원작의 대사를 사회의 현재 이슈와 부합하게 재편집해 웃음을 선사하거나 "현시점의 이슈를 정리하면 이런 듯?" 정도의 느낌으로 만화의 내용을 그대로 올려 공감을 얻는 방식이다. [고독한 미식가]가 이런 패러디에 다양하게 활용되었고 덕분에 사람들은 "대체 원작이 무엇이냐?"며 원작 만화를 찾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 속에서 더 많은 대중들에게 이 작품은 단순히 패러디 만화가 아닌 "좋은 만화"로 재평가 받게 되었다.

그 결과 2007년 단권으로 끝난 [고독한 미식가]의 증보판이 2010년 나왔는데, 이 책엔 지로와 구스미가 지로의 또 다른 작품 [선생님의 가장]의 원작자인 가와카미 히로미와 진행한 대담이 실려있다. 또 구스미가 병원에 입원해 경험했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특별 편:도쿄 모 병원의 가자미조림]이 작품 후반부에 새롭게 편성되어 있다. 그 후 2012년에는 독특한 심야드라마들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 [TV 도쿄]에서 [고독한 미식가]가 드라마로 방송되면서 큰 호응을 얻게 되었고 시즌제로 안착하게 된다. 특히 재작년 한국에 "먹방"이 휘몰아치며 혼자 밥을 먹는 "혼밥"이란 행위도 크게 관심을 받았는데 주인공 역할을 맡은 배우 마츠시게 유타카는 그 대명사로 알려지며 많은 대중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그 후 2015년부터 [고독한 미식가]는 비정기적으로 만화가 다시 연재되기 시작했다. 구스미스는 증보판의 특별 에피소드를 구상할때 "새 에피소드를 10년 후에 일어난 이야기로 설정할지, 그러지 않을지를 정하는 것부터 고민이었다."라고 말했지만 결국 주인공의 원래 나이 그대로 설정을 잡아 스토리 써나가도록 결정했는데 그 흐름은 단행본 2권의 시작에도 이어져있다. 사실 1권에 비해 고로가 쾌활한 표정이 많아서 좀 더 젊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도 있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약간 가벼워진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1권의 종이질에 비해 2권의 종이가 좋고 밝은 톤이라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하튼 이 작품은 다니구치 지로가 사망한지 1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그 어느 곳에서도 연재 종료라는 표현을 찾아볼 수 없다. 사실은 매 편, 매 화가 마침표라 딱히 "끝"이라는 단어가 필요할까 싶기도 하지만 누군가 구스미의 글을 받아서 계속해서 작품을 이어나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있다. 언제나 그랬듯이 비정기적으로 한 번씩 툭- 툭- 나오다 묶여서 단행본으로 나오는, 늘 있던 그 자리에 이 작품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출판본은 아쉬움이 정말 많다. 우선 6년의 간극이 있긴 하지만 1권과 2권의 판형이 서로 맞지 않는 점은 굉장히 실망스럽다. 표지의 질감도 다르고 타이포의 어떤 통일성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또한 고로가 음식을 먹으며 속마음을 전하는 내레이션 대사도 1권에선 한국식으로 가로로 써져있지만 2권에선 일본식으로 세로로 써져있는 등 좀 더 나아진 편집본을 독자에게 전하고자 노력한 모습은 보이지만 역시 통일성이 없다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다. 차라리 1권도 다시 재편집을 해서 함께 재출간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또한 1권의 중간중간에 효과음 타이포들도 정말 이렇게 밖에 할 수가 없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참담한 구석들이 많다. 이렇게 신뢰를 잃다 보니 "정말 제대로 번역은 한 것일까?" 혹은 "만화의 상단에 잘린 컷들이 많은데 일본판도 과연 저럴까?" 등등 많은 불신을 가지고 작품에 제대로 집중할 수가 없었다. 정리하자면 진정한 작품의 묘미는 1권에 있는데 편집이 형편없고 2권은 편집은 상당히 개선되었지만 1권만 못하다는 딜레마가 정도이다. 적어도 한국에선 그렇다.


마지막으로 누군가 나에게 다니구치 지로의 작품을 추천받길 원한다면 그 첫 번째는 역시 [고독한 미식가]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무심한 듯 시크하게 거리를 돌아다니다 식당에 들어가고, 음식들에서 어떤 맛을 발견하고 또 자신의 개인사와 기억들이 연결되어 생각에 잠기기도 하는 고로의 모습을 보면 자신의 위치에서 묵묵히 무엇인가를 해나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 혹은 스스로를 이 거대한 사회의 작은 톱니바퀴 정도로 느끼기 시작하는 분들에게 인생의 한 부분을 타인에게 드러내지 않고도 소소하게 자신만의 영역을 확보해나가는 가이드역할로 이 책은 추천해주고 싶다.

[고독한 미식가]는 바로 그런 작품이니까.

- 2부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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