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호, <오리진>

- 윤태호, <오리진> -


인간은 항상 다양한 것들을 궁금해하다 많은 것을 발견하고 기록해왔다. 우린 그것을 "교양"이라고 불러왔는데 그중 19세기 말부터 21세기 초까지만 해도 "대백과 사전"이라는 포맷으로 많이 존재했었다. 물론 이것의 순기능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대백과 사전"은 유럽 중심으로쓰여져있고 그들의 문명의 과부하와 자원의 약탈, 자본의 비도덕성을 정당화시키고 변명하기 위한 도구로 설파된 측면을 부정할 수 없다. 또한, 지금 생각해보면 인류 전체를 과도한 희망과 기대, 위대함으로 포장했다는 측면에서도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 후, 시대가 변해 온라인 네트워크가 도래하면서 지식과 정보가 다양한 각도에서 다뤄지기 시작했는데 물론 잘못된 정보나 정제되지 못한 소스들로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그 와중에도 우린 여로모로 인류의 "교양"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법,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위대하거나 무해한 존재만은 아니라는 것을 배우고 익혀가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윤태호의 <오리진> 시리즈는 지금 시대에 어울리는 다양한 주제들을 겸허한 마음으로 인간의 이기심과 양심을 적절히 오가며 세련되게 다루고 있다. 




한국에서 만화를 조금이라도 즐기는 사람 중 윤태호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적어도 <미생>이라는 그의 작품은 만화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대다수 안다. 많은 사람이 그의 작품에 대해 드라마틱한 이야기 구성을 위한 취재의 치밀함과 탁월한 작화연출을 칭찬하고 수많은 수상과 함께 현재 한국만화판에서 가장 컨디션이 좋은 작가라는 것에 부정하지 않지만 좀 다른 측면에서 윤태호라는 작가가 정말 "작가(집을 짓는 사람)"라는 원의미에 맞게 보여주는 모습들을 소개하려 한다. 2015년 12월 10일 발행된 위즈덤하우스의 <미생 메이킹 스토리>의 서두를 보면 바로 그의 고민과 진정성을 느낄 수 있다.


"<미생>을 하면서 항상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습니다. 요란한 <미생>의 성취 뒤에 가려져 있는 조력자분들의 노고가 드러나지 않아서입니다. 취재의 치밀함과 뛰어난 디테일이란 말이 제 작업을 묘사하는 상징이 되어 버렸지만 저는 언제나 그런 표현들이 부담스러웠고 막을 수 없는 평가라면 저 혼자 받아야 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라고 시작하는 그의 글과 책의 내용 내내 취재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준 분들과 출판사의 서포트, 그리고 팀원들에 대해 고마움을 절대 잊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만화를 만화가 혼자서 만든다, 혹은 전문가이니 선만 그으면 쉽게 만들어진다고 은연중에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절대 그렇지 않다. 특히 웹툰처럼 5, 6일에 한편씩 완성해야 하는 사이클 속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있는 메인 작가는 거의 영화감독과 같은 위치로 매주 어마어마한 진두지휘를 해야 한다

누군가는 수작업이나 디지털로 펜터치를 계속해야 하고 사진과 같은 디테일을 자랑하는 배경을 누군가는 계속 그려야 한다. 누군가는 그것을 모아 편집과 함께 말풍선의 레이아웃을 콘티와 확인하며 웹툰은 웹툰답게, 출판물은 출판물답게 동선을 짜 편집 및 보정을 해야 하고 이 모든 과정이 차질없이 진행되도록 지속적인 협업을 모두 함께 진행해야 한다. 이걸 매주 쉬질 않고 한다는 노고는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정말 어마어마한 것이다.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 모든 제작진이 누구인지를 알고 보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그 만화의 모든 제작진이 누구인지 알 필요는 없으나 이런 과정에서 많은 팀원과 서포터들이 매주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우린 인지해야한다. 또 이 모든 과정 끝에 대중의 평가가 메인 작가에게만 간다는 것은 앞으로 고민해봐야하는 부분이 있고, 그 부담감과 함께 감사함을 그는 잊지 않고 실제로도 여건이 허락하는 만큼 팀원들을 "대접"하려 노력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 증거로 문하생들에게 월급 및 4대 보험을 책임져주고 그만둘 경우를 대비한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 또한 프로젝트별의 작업을 뛰어넘는 협업엔 그 노동에 걸맞는 비용을 또 지급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윤태호는 작품의 작가를 넘어 이미 만화제작의 시스템에서도 이런 새로운 집을 지어나가고 있다. 난 <오리진> 시리즈도 그런 새로운 형태의 세련된 집을 활용하여 제작되고 있는 작품으로 인식하고 있다. 윤태호라는 이름이 주는 크기는 어쩔 수 없겠지만 출판물 이곳저곳에서 글 작가들이 좀 더 돋보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교양"이라 부르는 것은 시대에 따라 그 유의미함이 달라져 "그땐 그랬지"로 추억되기도 하고 또 변화를 자주 모색하기 때문에 새로운 해석이 늘 필요하다. 그래서 그것의 탐구를 위한 "교양서"라는 말은 우리에게 이젠 낯설지 않은 용어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만화라는 단어와 함께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닌 어른들을 위한다는 요소까지 첨가하게 되면 적어도 한국에선 매우 생소한 "어른들을 위한 만화교양서"가 된다. 내 기준에서 오리진은 그런 척박한 땅으로 향하는 새로운 도전이라고 할 수 있고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한국에서 만화산업의 극히 제한적 일부로 축소와 축소를 거듭하고 있는 출판만화는 원래 저부담 제작비로 작은 판형과 질 낮은 종이를 활용한 판매 부수의 사이클로 승부를 보고 있었다. 그래서 자극적이어야 했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재밌어야 했으며 작가들에게 엄청난 고퀄을 요구해 소장 욕구을 불러일으켜야 했다. 그 근본에는 출판만화가 주는 "환상"이라는 키워드가 있었기에 웹툰이 주는 "공감"이라는 키워드와는 사뭇 다른 충족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만화소비층의 경제력이 악화되거나 볼거리가 많아져 만화가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또 접근성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무료 모바일시장이 열리자 출판만화는 살아남기 위한 길을 모색해야 했다. 앞서 설명한 방식의 출판만화는 대부분 일본에서 건너오는 작품들에 의존하게 되고, 소수의 출판사는 제 3세계인 유럽만화와 북미의 그래픽 노블을 고급스러운 단권 형식으로 출판하고 있으며 다수의 출판사는 어린이 교육용 만화시장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일부의 최상위 인기 웹툰들이 독자들의 요구에 출판을 병행하지만, 굉장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곤 대부분 그 판매 부수가 5,000권도 되질 못하는 게 현실이라 펀딩을 통해 어느 정도 계산된 권수만 제작하는 실정이기도 하다.

이런 와중에 처음부터 선 웹툰 연재, 후 출판으로 기획되고 또 조금은 색다른 어른들을 위한 교양 만화라는 점, 그리고 당대 최고의 컨디션을 자랑하는 작가와 2002년부터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지식과 정보, 문화가 담긴 완성도가 높은 단행본"을 출간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위즈덤하우즈의 협업은 출판만화에 돈을 소비할 용의가 있는 독자, 그리고 새로운 정보와 시선을 경험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행복한 시간을 선사해주고 있다. 

작품의 제목인 오리진(Origin)의 사전적 의미는 기원, 근원, 출신 등으로 나오는데 우리가 평소 생각하기 쉬운 선험적이거나 태초의 기원, 근원을 설명하고자 기획/제작된 작품은 분명 아니다. 사람인 이상 누구도 알 수 없는 신의 영역이 아닌 철저히 "인간의 시작"에 그 초점을 유지하고 있다. "인간은 왜 이렇게 발전해왔고 변화해 왔는가"를 큰 희망이나 과대포장 없이 오늘을 사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 묘사하고 있다. 그러려면 처음엔 아무것도 모르지만, 관찰이란 태도가 가능한 인물이 필요했다. 그래서 로봇캐릭터 봉투가 등장했다. 처음엔 인간들이 보여주는 궁상들을 이해하기보단 감정적으로 대응하다가 점차 이해하고 이론적으로 해석이 가능해지는 변화의 시간을 단기간에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점은 전작의 주인공인 <미생>의 장그래와 비슷한 점이다. 차이점이라면 <미생>은 상황 때문에 발생하는 인물들의 감정을 어떻게 소화하는지에 포인트를 줬었고 <오리진>은 그런 상황이 왜 발생하였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인간에 대해 문답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권별 테마가 존재하지만 선별하여 읽기 힘든 스토리텔링이다. 1권부터 스토리라인이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보온"이라는 주제엔 관심이 없고 "에티켓"이라는 주제만 읽고 싶거나 그 권을 먼저 읽고 싶은 독자들은 그 선택권을 잃은 느낌이다. 물론 매 권의 시작에 지난 줄거리도 설명해주는 친절함이 있지만, 전권을 다 읽어야만 할 것 같은 설정들이 분명 존재했다. 연재만화라서 스토리와 인물에 집중해서 보는 작품이라면 상관없겠지만 권별 테마가 메인이 되고 그것에 대한 새로운 시각에 집중하는 "교양서"의 경우엔 이런 기획에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결론적으로 독자가 내릴 선택은 처음부터 꾸준히 구입해서 읽는 것이었지만 그것이 100권까지 이어지고 그 어느 시점에 이 작품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새로운 독자들에겐 이 부분은 크고 무거운 고민거리가 될 것이다.

오리진은 "어른들도 읽을 수 있는 교양 만화"의 기획이라는 점과 웹툰과 출판물의 연출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적 고민을 처음부터 가져갔다는 점에서 의미하는 바가 크다. 윤태호였기에 할 수 있는 도전이기도 하고 또 곁에서 서포트하는 분들과 함께 다른 만화가들이 진출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분야를 제대로 구축만 해낸다면, 독자들에겐 "교양"을 위한 좋은 작품으로 작가들에겐 또 하나의 활로의 아이디어로 기억되는 작품이 될 것이다. <오리진>은 위즈덤하우스에서 출판되고 있고 2018년 4월 기준 현재 3권까지 출간되었으며 권당 13,000원이다.


끝.


* 본 평론에 사용한 이미지는 위즈덤하우스 미디어그룹에 사용 허락를 미리 받았음을 명시합니다.

* 본 리뷰/평론은 이재민 웹론평론가와 성인수 만화평론가/작가 공동으로 진행하였습니다. 이재민 웹툰평론가는 웹툰을 기준으로, 성인수 만화평론가/작가는 출판만화를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이재민(푸른봄) 웹툰평론가 웹툰 평론 "실패할 기회조차 박탈당한 사람들에게, 윤태호 작가의 <오리진>"

* 성인수 만화평론가/작가의 출판만화 평론 "윤태호, <오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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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6)
  • 3권이면 100권까지,,,
    나중에 집 서재가 된다면 전권 진열해 보고 싶군요
  • 웹툰으로 모으고 있지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진열용으로도 구매를 하고 싶어지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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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표가 100권이었나 보군요
  • 다음 권 소식은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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