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툰의 진화과정 ① – 게시판에 그리던 일상툰, 인터넷 문화를 만나다

웹툰의 역사에서 가장 넓게 많은 사랑을 받은 장르를 꼽으라면 바로 생활툰, 혹은 일상툰을 꼽을 수 있다. 초기 웹툰의 대표적인 작품들만 봐도 스노우캣의 <스노우캣>, 정철연의 <마린블루스>와 같은 작품들은 모두 일상의 신변잡기적인 내용을 그린 일상툰이었다. 이런 작품들은 주로 블로그 등지에서 연재되어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밖으로 퍼졌다. 인터넷 문화가 막 생겨나던 시기, 일상툰은 말하자면 인터넷 문화의 선구자였다. 

 

디씨인사이드 발 “짤방” 문화가 생겨나면서 생겨난 합성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이름붙여진 ‘필수요소’ 들은 다시 웹툰, 그 중에서도 당시 대세이던 일상툰에 흡수되어 재생산됐다. 당시의 웹툰은 글에 비해 빠르게 소비됐고, 다른 콘텐츠에 비해 쉽게 제작할 수 있었으며 동시에 투입되는 노동력 대비 파급력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에는 전문가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영상편집에 비해 간단하게 이미지를 생산할 수 있었던 컴퓨팅 파워의 증가 역시 한 몫을 했다.

 

‘싱하형’, ‘개죽이’같은 인터넷 짤방의 필수요소들은 인터넷 문화의 르네상스를 열었다. 짤방이란 게시글이 삭제되는(짤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달아놓는 사진을 의미하는데, 게시글과는 전혀 상관없는 짤방을 달거나 아무 의미 없는 사진, 또는 합성 필수요소가 포함된 사진을 올리는 것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아무 맥락 없이, 또는 사람들을 속이는 ‘낚시’를 위해 짤방이 활용되거나 댓글, 답글 등에서 사람들과 호응하는데 사용되는데, 이런 짤방의 탈맥락성은 웹툰에 흡수되어 병맛 만화로 진화하게 된다. 

 

인터넷 문화가 대중문화와 호응하기 시작한 2000년대 중후반, 웹툰은 바야흐로 병맛만화 전성시대를 맞는다. 이말년의 ‘와장창’, ‘그래야 내 손님답지’와 같은 밈이 등장한 때도 이때다. 2000년대 후반의 병맛만화 대유행은 이런 인터넷 문화의 ‘짤방’문화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말년의 "와장창", 인터넷 문화를 수놓은 밈 중 하나다.

 

 

웹툰, 병맛 만화와 생활툰으로 분화하다

 

<마음의 소리>, <이말년씨리즈>, <골방환상곡> 등의 작품은 작가 본인이 화자로 등장하지만 가상의 에피소드를 통해 개그요소를 강화한 만화로 진화했다. 반면 작가 본인의 일상을 공유하던 일상툰은, 작가가 주인공으로 등장해 개그 요소를 가미하기보다 일상에서의 공감과 웃음을 주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개인적인 분류로는 일상보다 ‘생활’에 중심을 두고, 생활 속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통해 비슷한 생활양식을 가진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을 다루는 작품이라고 분류할 수 있다고 본다. 

 

이전의 일상툰이 작가 캐릭터를 분명히 내세웠다면, 2000년대 후반에 등장한 ‘생활툰’은 여전히 작가 본인이 주요 화자로 등장하지만, 캐릭터를 개성있게 그리기보다 단순화(카툰화)해 독자들이 보다 쉽게 공감할 수 있도록 했다. 기본적으로 생활툰은 작가의 생활이라는 맥락이 있기 때문에 맥락에서 벗어난 비틀기로 웃음을 주는 ‘병맛’ 만화와는 다른 궤적으로 진화한다.

 

 

신촌역에 위치한 '카페낢진'

 

 

인터넷 문화의 생산자이면서 소비자인 작가가 그린 ‘생활툰’의 대표적인 작품은 서나래 작가의 <낢이 사는 이야기>와 김진 작가의 <나이스진타임>이다. 이 두 작품은 작가 본인의 캐릭터를 단순화시켜 등장시키고, ‘도시 생활자’, 그리고 ‘잉여인간’이라는 키워드로 묶는다. 서나래 작가는 자신의 작품 소개에서 “일어나면 열 두시, 내 방은 언제나 쓰레기”라고 소개하고, 김진 작가는 자신의 캐릭터를 서른이 다 되도록 집에서 부모와 함께 사는(지금은 평범해진) 아직 철들지 못한 사람처럼 묘사한다. 

 

당시 소위 ‘88만원세대’라고 불리던 청년층 사이에선 스스로를 ‘잉여인간’이라고 부르는 등 자기비하가 유행했고, 두 작품은 이런 시대상과 맞물려 독자들의 깊은 공감을 얻었다. "비록 잉여인간이지만"을 모토로 하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인터넷 문화를 향유하는 젊은 층이 위주가 된 작품이기 때문에, 생활툰은 당시 청년, 특히 도시 거주 20대 청년의 생활상을 드러낸다. 다만 현실의 치열한 경쟁을 전면에 그리기보다 그 사이에서 느끼는 소소한 행복이나 고민을 그리는 에피소드를 통해 일종의 ‘힐링’ 콘텐츠로 자리잡는다.

 

일상을 소재로 한 개그만화와 힐링물의 진화는 '병맛' 만화와 '생활툰'을 낳았다. 2000년대 초중반 인터넷 문화와 결합된 웹툰은 재편집, 캡쳐가 용이하다는 점 때문에 짤방으로 널리 쓰인다. 서브컬쳐에서 크게 유행한 짤방 문화는 웹툰을 타고 대중문화와 연결되기도 한다. <마음의 소리> 239화에 처음 등장한 '차도남'이나 <골방환상곡>에 등장한 '엄친아'는 이제 일상의 언어가 됐다. 인터넷 문화가 주류문화와 섞이기 시작한 시대에, 생활툰은 나름의 진화를 통해 '웹툰'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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